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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화양 "윤형숙 열사,'좌수우목'잃은 학생 독립운동가"기념관 건립 촉구

박영평 여수시의원 윤 열사 독립운동 정신 재평가 시점 ...도로명 지정 기념관 건립이 시민 자부심

고용배 기자 | 기사입력 2024/08/20 [17:28]

여수 화양 "윤형숙 열사,'좌수우목'잃은 학생 독립운동가"기념관 건립 촉구

박영평 여수시의원 윤 열사 독립운동 정신 재평가 시점 ...도로명 지정 기념관 건립이 시민 자부심
고용배 기자 | 입력 : 2024/08/20 [17:28]

 

▲ 광주 수피아 여고 학생신분이던 1919년 3월 10일 광주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던 윤형숙 열사 묘 여수시 화양면 창무에 있다. @ 고용배 기자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며 만세운동을 벌이다 왼팔과 오른쪽 눈까지 잃은 여고생 윤형숙 열사는 여수시 화양면 창무 출신이다.

 

고향 여수에선 윤 열사의 역사적 재평가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를 기리는 기념관 건립과 도로 명칭을 부여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수시 의회 박영평 의원은 윤 열사의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기념관 건립에 대한 타당성 용역에 속히 서둘러 달라고 여수시에 촉구했다.

 

다음은 박영평 의원을 통해 윤 열사의 생을 간략히 들어봤다.

 

박 의원은 윤형숙 열사는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윤치운의 32녀 중 장녀로 태어나 7세 때 친척 윤석만과 선교사 변요한의 도움으로 매산학원을 수학하고 광주 수피아여고에 입학하였다고 했다.

 

학생 신분이던 19193.1 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자 10일 광주 장날을 택일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해 태극기를 흔들며 천 여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 만세를 주도적으로 외치다 일본군 군도에 왼팔을 잃었다고 한다.

 

이날 독립만세 시위에서 오른쪽 눈까지 실명한 채 체포돼 징역 4개월과 4년간 유폐 되었다고 한다.

 

형기를 마치고 불편한 몸으로 국민 계몽운동에 나서며 '나라가 망한 것은 시민이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며 문맹퇴치 운동을 하고 이후 반공청년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이승만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  20일 여수 화양면 창무의 윤형숙 열사의 묘 우측에 세워진 독립유공자 공적비 앞에 무궁화 꽃이 만개했다. @고용배 기자



6.25 전쟁 중에 윤 열사가 이승만과 친분이 있음을 알고 있는 북한 내무서원이 여수시 남면 신포리에 피신한 열사를 체포하여 여수경찰서에 감금했다.

 

윤 열사는 1950928일 퇴각하는 인민군에 의해 손양원 목사 등과 함께 10명씩 묶인 채 끌려 나가 여수시 둔덕동에서 총살을 당했다.

 

이승만과 윤형숙의 인연은 윤형숙을 매산학원 수피아 여학교에 수학하도록 주선해준 변요한 선교사는 이승만이 1905년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할 때 추천서를 써줬던 그 사람이다.

 

그 인연으로 변요한 선교사가 독립운동을 한 윤형숙을 애국 동지로 이승만에게 소개해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경무대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50929일 피살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화양면 창무리 산 81번지에 안장하였고 1960323일 의열지사 윤형숙의 묘지를 화양면 창무리 80번지로 이장하고 10년간 방치한 비석을 세우고 묘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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