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알유재〙원두는 왜 볶을수록 색이 변할까?알아두면 유익하고 재미있는 커피 이야기… 제24화. 갈색으로 피어나는 로스팅의 과학
※ 본 글은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김연홍 기자의 커피 인문 칼럼 「커피 알유재」 시리즈로, 총 100회에 걸쳐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합니다.
카페에서 원두를 고를 때 우리는 흔히 "라이트 로스팅", "미디엄 로스팅", "다크 로스팅"이라는 표현을 만난다. 색도 연한 갈색부터 짙은 갈색,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것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원두는 원래부터 갈색이었을까?
사실 커피 열매에서 꺼낸 생두(Green Bean)는 이름 그대로 녹색이나 황록색을 띤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갈색 원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수백 도의 열을 견디며 새롭게 태어난 결과이다. 그렇다면 생두는 왜 볶을수록 갈색으로 변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원두의 색 변화는 '탄 것'이 아니라 수분이 빠지고 당과 단백질이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 변화의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커피의 향과 맛도 함께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로스팅은 단순히 색을 입히는 작업이 아니라 커피의 개성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로스팅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수분의 증발이다. 생두에는 약 10~12%의 수분이 들어 있는데, 100℃를 넘어서면서 수분이 증기로 바뀌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원두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고 노란빛으로 변하며 볶은 곡물이나 건초를 연상시키는 향이 나타난다.
온도가 150℃를 넘어가면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인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시작된다. 당분과 아미노산이 만나 수백 가지 향기 성분과 갈색 색소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시기부터 커피에서는 견과류, 초콜릿, 곡물, 토스트 같은 향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커피다운 향'이라고 느끼는 대부분의 향이 바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원두의 색도 연한 갈색에서 점차 진한 갈색으로 변해 간다.
이후 170~190℃ 정도에서는 로스터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퍼스트 크랙(First Crack)'이다. 원두 내부의 수증기 압력이 높아지면서 작은 폭발음이 '탁탁' 하고 들리는데, 마치 팝콘이 터지는 소리와 비슷하다. 이때부터 원두는 본격적으로 커피다운 맛을 갖추기 시작한다.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캐러멜화(Caramelization)가 활발해진다. 원두 속 당분이 분해되면서 캐러멜이나 흑설탕 같은 달콤한 향을 만들고 색도 더욱 짙어진다. 산미는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단맛과 묵직한 바디감이 살아난다.
220℃ 안팎에서는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온다. '세컨드 크랙(Second Crack)'이라 불리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원두 조직이 더욱 부서지고 내부의 오일까지 표면으로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색은 거의 검은 갈색에 가까워지며 스모키한 향과 강한 쓴맛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로스터들은 초 단위로 시간을 조절하며 자신이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낸다. 같은 에티오피아 원두라도 밝게 볶으면 레몬이나 베리 같은 산뜻한 향이 살아나고, 깊게 볶으면 초콜릿과 다크캐러멜 같은 풍미가 강해진다. 원두는 같지만 로스팅에 따라 전혀 다른 커피가 탄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원두의 색이 반드시 맛의 좋고 나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한 갈색이라고 더 좋은 커피도 아니고, 연한 갈색이라고 덜 익은 커피도 아니다. 어떤 원두는 밝게 볶아야 개성이 살아나고, 또 어떤 원두는 조금 더 깊게 볶아야 균형이 좋아진다.
나라별 로스팅 문화도 조금씩 다르다. 북유럽에서는 과일 향과 산미를 살리는 밝은 로스팅을 선호하는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에 어울리는 묵직한 바디감과 진한 풍미를 위해 깊은 로스팅을 즐겨 왔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식문화와 커피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로스팅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검게 볶은 원두가 좋은 커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스페셜티 커피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원두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로스팅을 찾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로스터는 원두가 가진 개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점차 널리 퍼지고 있다.
결국 원두의 갈색은 단순히 불에 그을린 흔적이 아니다. 수분이 증발하고, 당과 아미노산이 만나고, 수백 가지 향기 성분이 새롭게 태어난 시간의 기록이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원두 하나에는 자연이 키운 생두와 로스터의 경험, 그리고 과학이 함께 만들어 낸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 커피를 마실 때 원두의 색을 한 번 천천히 바라보자. 그 갈색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향과 맛이 태어난 과정을 보여 주는 하나의 언어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불에 그을린 콩이 아니라, 자연과 과학, 그리고 사람의 기술이 함께 빚어낸 작은 예술 작품인 것이다.
「커피 알유재」는 다음 주 월요일 제25화, “아메리카노는 정말 미국에서 시작됐을까?”로 계속됩니다. (참고 문헌) James Hoffmann, 『The World Atlas of Coffee』 / Kenneth Davids, 『Coffee: A Guide to Buying, Brewing, and Enjoying』 / Illy & Viani, 『Espresso Coffee: The Science of Quality』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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